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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이야기

핵 폭발 뒤 최후의 아이들, 절망 속에서 피어나는 교훈

by Rail-road 2024. 6.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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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 폭발 뒤 최후의 아이들, 구드룬 파우제방, 보물창고)

 

 

'어린이 문학' 코너에서 만난 책

서점에 갔을 때 이 책이 ‘어린이 문학’ 코너에 비치되어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독서를 마친 후엔 어린이들이 읽기에 다소 충격적일 수도 있을 만큼 사실적인 묘사와 이야기 구성에 또 한 번 놀랐다다소 비정해 보일 수도 있을 만큼 작가는 이 이야기를 너무나도 섬세하고 자세하게 그려내고 있으며, 또한 스피디한 상황 전개로 시종일관 독자의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 이야기의 중심 소재는 ‘핵폭발(핵전쟁)’이다이야기가 시작되자마자 작가는 ‘우리 부모님또 대부분의 어른들이 생각한 것처럼...(중략)...서로 간의 갈등이 심해져 결국 전쟁이 터진다 해도 최악의 상황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라고 작중 화자(주인공인 롤란트)의 말을 빌려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현실 인식을 꼬집는다. ‘그러나 모든 일은 한순간에 벌어졌다. 평소와 다름없는 일상적인 삶을 보내고 있던 사람들에게 느닷없이 ‘핵폭발’이라는 재앙이 들이닥친다그 뒤의 상황은 참혹하다 못해 비참하기까지 하다폭발로 인한 피해는 당연히 말할 것도 없고모두가 우려했던 방사능의 피해 앞에서 그동안 배웠던 지식과 도덕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설상가상 전염병(티푸스)과 기근추위 등으로 상황은 계속해서 악화만 되어 갈 뿐이다.

 

상상도 하기 힘든 이러한 현실 속에서 당장의 음식과 잠자리를 위해 약탈과 살인을 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과연 마냥 악하다고비도덕적이라고만 할 수 있을까.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도덕인가핵폭발 뒤 간신히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주어진 것은 또 다른 전쟁이다이러한 현실의 중심에 주인공 ‘롤란트’가 있다롤란트는 이제 13우리나라로 치면 초등학교 6학년쯤이다. 핵폭발 뒤의 현실을 이런 어린아이의 시각으로 바라봄으로써 상황을 보다 객관적이고 1차적으로 여과 없이 받아들일 수 있다.

 

“아빠, 옌스가 뜨겁지 않아요. 이젠 열이 내렸어요.” 나는 안심하여 아빠에게 속삭였다.
“그래, 그 앤 이제 열이 없단다. 죽었으니까.

 

 

 

모든 것이 변한 핵폭발 이후

 

롤란트는 많은 것을 경험하고 목격한다병원에서 환자들을 위해 물을 갖다 주기도 하고본인도 티푸스의 걸려 2주 동안 생사를 오가기도 한다그리고 자신의 친 혈육인 누나 ‘유디트’와 동생 ‘케르스틴’의 죽음도 경험한다보통 소설 속에서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의 죽음은 어느 정도 예측가능하기 마련인데, 이 이야기 속 인물들의 죽음은 핵폭발이 그랬던 것처럼 너무나 순식간이며 또 그 죽음을 슬퍼할 여유조차 주지 않는다그것은 우리 독자들뿐만 아니라 작중 화자인 롤란트에게도 마찬가지이다엄마의 죽음으로 슬퍼할 겨를도 없이태어난 아이가 기형이라는 사실이 그러한 현실을 잘 말해준다핵폭발 뒤 모든 것이 변했다식습관도 변했으며, 거리에는 아무도 돌보아 주지 않아 고아가 된 아이들과 시체들이 이곳저곳 널려있고조금의 도움도 나누어주기를 꺼리는 비정한 사람들로 변해간다하지만 아무도 그들을 비난할 수 없다.

 

그렇다면 이 모든 원인인 ‘핵폭발’은 도대체 왜무엇을 위해누구를 위해 일어난 것인가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이유는 중요하지 않다작품 서두에서는 ‘일이 터지기 몇 주 전부터 동서 간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었다.’ 고 하면서 전쟁의 분위기를 설명하고 있지만그것이 무엇을 위한 전쟁인들 핵폭발 뒤의 상황은 이미 그것이 그 누구를, 그 무엇을 위한 것도 아님을 잘 설명해 준다. 이야기가 결론부에 도달할 때쯤 한 아이가 롤란트의 아빠에게 묻는 대사,

 

“선생님은 평화를 위해 무엇을 했죠?”

 

 

핵전쟁이 일어난 진짜 원인이 어쩌면 바로 여기에 있음을 시사한다. 전쟁은 소수 권력집단에 의해 일어나며 그밖에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 전쟁으로 인해 피해를 받게 되는 불특정 다수이다롤란트의 아버지도 그 다수들 중 한 명일 뿐이다. 하지만 작가는 그렇다고 해서 우리는 이러한 상황에 절대 ‘무관심’해서는 안 되며무관심이야 말로 바로 핵전쟁이 일어난 진짜 이유인 것이고‘어른’들은 우리의 후손들자라날 아이들을 위해관심을 갖고 해결해 나가야 할 의무가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핵 전쟁은 정말 일어날 것인가

핵폭발 뒤 4년 후 롤란트는 열일곱 살이 된다이 책을 성장 소설이라는 측면으로 볼 때롤란트는 핵폭발이 일어날 당시 아이로서는 볼 수도봐서도 안 될 만큼의 여러 가지 일들을 경험했고 또한 그 과정 속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으며남을 돕고, 4년이 지난 현재에 와서는 자신보다 어린아이들의 교육에 힘쓸 것을 다짐하는 롤란트의 모습은 매우 교훈적이다또한 작가 ‘구드룬 파우제방’은 책 서문에서 ‘나의 아들 마르틴과 우리들의 미래를 위하여’라는 간단한 이 책의 목적을 밝히는데 이러한 측면에서열일곱 살이라고 하면 아이라고 하기도 뭐 하고 어른이라 부르기도 애매한 나이즉 과도기적인 청소년기에 있는 롤란트라는 인물설정은 어쩌면 당연한 듯 보인다.

 

이 소설은 단순 아동 코너에 있는 성장소설만은 아니다지금 당장이라도 일어날지도 모르는 현실문제에 대한 우리 모두의 인식 전환을 요구한다만약 이 책을 보고 나서도 '그래도 핵전쟁이 설마 일어나겠어?'라고 생각하고다시 무관심해진다면 (작중에서 표현한 대로) 우리는 정말 ‘천벌 받을 부모들’이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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