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분벽화란
'고분'은 우리말로 바꾸어 표현하면 '옛 무덤'을 뜻하며, 벽화는 말 그대로 벽의 그림, 즉 벽에 그린 그림을 말한다. 보통 벽화는 건축물 내외의 천장과 벽면을 화폭으로 삼아 그린 그림을 말하지만 고분이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고분벽화'란 옛 무덤(내 벽면 혹은 천장)에 그려져 있는 그림을 뜻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옛 조상들은 왜 죽은 자가 묻히는 고분에 벽화를 그려 넣고자 했던 것일까.
고분벽화라는 것은 일종의 '장의문화'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장의문화란 넓은 의미로 사람이 죽은 후 행해지는 일련의 의식들 및 매장 방식, 방법 등 장례와 관련된 모든 문화를 뜻하는데 사실 ‘죽은 자를 매장한다.’는 문화 자체가 사후세계에 대한 관념, 즉 내세관을 형성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인간의 삶은 죽음을 끝으로 완전히 소멸하는 것이 아니라 그 후에도 계속되리라는 신념 체계와 믿음을 갖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내세관은 삶과 죽음이 서로 단절된 것이 아니고 연속한다는 믿음에 근거하여 성립하는 것이다. 이들 중 현세에서 높은 신분과 지위를 가지고 있었던 귀족 또는 지배자들은 죽은 뒤에도 부귀영화를 누리고자 하는 욕심이 있었을 것이고, 이에 따라 의관, 장신구, 무구, 애완용품 등뿐만이 아니라 지위에 따라 적게는 한두 명 많게는 수백 명까지도 그의 시중을 들던 사람들 및 노예들을 산 채로 매장하기도 하였다. 이것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순장(殉葬)’이라는 문화이며, 이러한 문화는 아시아뿐만 아니라 유럽 및 세계 곳곳의 무덤에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형태와 방식에는 조금씩 차이가 있겠으나, 이런 공통된 장의문화가 세계 여러 지역에서 발견된다는 것이 어떻게 보면 신기하기도 하다.)
그러나 순장은 사회적으로도 소요가 큰 장례 문화였으며 시간이 흐르고 사람들의 의식이 조금씩 성장함에 따라 순장에 대한 실제적 필요와 그 효과에 대한 의식이 점점 약화되었다. 이 순장이라는 장례 방식을 대신하면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 바로 ‘토용(土俑, 흙으로 만든 부장품 인형)’이라 할 수 있으며, 또 고분벽화도 바로 그러한 흐름 속에서 같이 등장한 장의문화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즉 개인적인 측면에서는 죽은 자가 살면서 누렸던 혹은 죽은 후에 누리기를 원했던 삶을 형상화하고, 사회적인 측면에서는 당시 유행했던 종교적 관념이나 시대적, 지역적 의식이 투영된 회화적 결과물이 바로 고분벽화라 할 수 있다.
동아시아의 장의미술
서양사 전반에서 로마를 빼고는 말할 수 없듯이 동양사 특히, 아시아 역사 속에서 중국을 빼놓고 말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고분벽화를 알기 위해서는 보다 넓은 개념인 장의미술에 대한 이해가 선행될 필요가 있으며, 따라서 일찍이 동아시아에서 장의미술이 발달한 중국의 장의미술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중국의 장의미술은 상주(商周) 이전부터 시작되었으나, 뚜렷한 갈래를 보이며 장의미술 작품들이 만들어지고 남겨지게 된 것은 상대(商代)에 이르러서이다. 그러나 이 시기의 장의미술은 청동기를 비롯한 주조물이나 조소품이 중심이었고, 백화(帛畵), 칠화(漆畵)를 비롯한 회화품 형태의 춘추전국 시대를 지나 한대(漢代)에 이르러서야 다양한 장르와 함께 더욱 발전하는 모습을 보이게 된다.
① 화상석, 화상전
화상석, 화상전의 기원은 진나라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으나 한대에 이르러서야 크게 유행하는 장의미술이다. 화상석이란 현실 인식 및 내세관과 관련된 다양한 제재들을 회화적인 표현으로 돌에 새기거나 또는 그린 것을 말하며, 이와 같은 표현이 작은 벽돌에 가해졌을 경우를 화상전이라 한다. 화상석은 농업생산력 및 야철업의 발달로 다른 지역에 비해 비교적 사회, 경제적 여건이 좋은 중국 산동, 서주, 남양, 섬북, 사천 지역에서 집중적으로 제작되었으며, 표현 방법에서도 음각, 양각 기법 등 다양하고 소재 및 내용도 풍부하다.
② 고분벽화
고분벽화는 진한(秦漢) 시기부터 하나의 장의미술로 자리매김한 장르이다. 초기에는 변경에서 띄엄띄엄 제작되지만, 후한 말 혼란기에 이르러 중국의 동북과 서북 지역으로 한족의 호강지주층이 이동하게 되고, 곧 이 두 지역에서 본격적으로 제작, 발전되기 시작한다. 위, 진 시기에 고분벽화는 주로 상류 귀족층의 장의미술로 선택되며 한대의 화상석에 비해 현실 생활과 관련된 제재가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된다. 화상석의 주요 제재였던 선인상서, 역사고사 관련 장면은 생략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남북조 시대에도 일반적으로 대행렬 등의 장면보다는 일상생활이 주요 제재로 주를 이루지만 널방 천장 고임의 제재로 천문성상이 채택되기도 하며, 그 제재 중 등장하는 하나가 바로 사신(四神)도이다. 고분벽화는 수, 당대까지도 왕공귀족 층의 주요 장의미술 중 하나로 선택된다.
③ 그 외 기타
그 외 기타 중국의 장의미술로 칠화, 백화, 동경 등이 있다. 칠화란 나무로 만든 관에 칠(漆)을 입히고 그 위에 그림을 그린 경우, 또는 칠기나 가구를 그림으로 장식한 경우를 말한다. 백화는 ‘비단 위에 그린 그림’을 뜻하며 무덤 안 널방에 걸어두거나 관을 덮을 때 사용하였다. 동경은 ‘구리거울’을 뜻하는데 거울 뒷면에 주로 신선신앙 및 천문상서와 관련된 그림들이 그려져 있다. 이처럼 칠화, 백화, 동경은 무덤 내부 벽면에 직접 그려지던 화상석, 화상전, 벽화와는 성격이 조금 다른 일종의 '껴묻거리'라고 할 수 있다.
앞서 이야기했듯 중국의 장의미술을 이해하는 것은 고분벽화를 이해하는 데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으며, 사실 이 내용은 앞으로 더 깊게 공부해 볼 주제, 바로 '고구려의 고분벽화'를 이해하는 데 반드시 선행되어야 하는 내용들이다. 고구려의 고분벽화를 중국에서 형성된 이러한 장의미술상의 흐름 속에서 같이 파악해 보는 것이 고구려뿐만 아니라 나아가 3~7세기 동아시아의 역사와 문화를 전반적으로 이해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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