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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이야기

'요재지이(聊齋志異)'를 통해 본 청나라의 시대상

by Rail-road 2024. 6.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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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재지이』청나라 시대 속으로

  우리는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흔히 “저건 좀 말도 안 돼!”라는 표현을 종종 쓰곤 한다소재의 현실성사건의 개연성 등 어느 하나 말이 되지도 않는데도 우리는 그런 이야기에 더욱 끌리게 된다그 이유는 물음과 동일하다. ‘말이 안 돼’기 때문이다상상 속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를 통해서 그것을 구체화하고 때로는 그 이야기에 자신을 동일시하면서 그 속에서 일종의 희열을 느낀다.

 

  『요재지이』는『삼국지』,『수호지』,『금병매』,『홍루몽』등과 더불어 중국의 8대 기서 중 하나이다. 다른 것들과 달리 어딘가 제목에서부터 괴이한 느낌이 들었다‘요’라는 글자가 주는 이미지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지만 왠지 이 이야기는 요괴나 귀신의 이야기일 것이란 생각이 들었고 난 그런 이야기엔 언제나 흥미를 느끼는 타입이었다. 사실 『요재지이』의 ‘요’는 ‘妖’(괴이하다도깨비)가 아니라 ‘聊’(귀가 울다)이었고이는 이 책의 저자 포송령의 서재 이름(요재)으로 즉, 책 제목은 ‘요재가 기록한 기이한 이야기’라는 뜻이다.  491편으로 된 단편을 모아 엮어놓은 것으로 주로 신선, 혼령, 귀신, 이상한 인간 등에 관한 이야기이며특히 요괴와 인간의 사랑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이야기의 비중이 높다포송령이 이 많은 작품을 어떻게 만들었을까 하는 궁금증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전해지기도 한다. 

포송령은 매일 아침 차를 끓여 넣은 물통과 담배 한 포를 준비해 가지고 사람들이 많이 왕래하는 큰 길가에 나가서 삿방석을 깔고 그 위에 앉아서, 오가는 사람들을 붙들어 무엇이든 이야기를 하게 하고 또 묻기도 하며, 한 편 차와 담배를 권하여 기분 좋게 이야기하게 한 후 이렇게 들은 이야기를 집에 돌아와서는 문학작품으로 각색하는 것이었다. (김광주 편, 2002, <한 권으로 읽는 요재지이>, 자음과 모음, 역자 서문 발췌)

 

  위와 같은 사실은 아주 중요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20년에 걸친 탈고 작업에 대한 '대단함'은 둘째로 하더라도, 이러한 집필과정은 작가 자신의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서 사람들의 여러 이야기를 망라했다는 점과특히 지배층이 아닌 불특정 다수였던 일반 사람들을 통해 이야기를 담아냈다는 점은 당시 사회의 밑에서의 역사즉 ‘사회사’적인 측면에서 매우 의미가 있는 고전이라 하겠다. 포송령이 청나라 초기 사람인 것을 감안했을 때이 이야기는 넓게 잡아서 명나라 말부터 청나라 초기의 시대상을 담고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관료사회를 비판하다

  『요재지이』를 통해 제일 먼저 꺼내볼 주제는 당시 관료사회에 대한 이야기일 것 같다포송령은 명나라 말기에 태어나 청나라 초기를 살았던 인물이다즉, 이 사실만으로도 그가 사회적 격동기에 태어나현실 속에서 일어나는 많은 모순들을 직접 보고 경험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해볼 수 있다. 『요재지이』에서는 특히 과거제도와 관리들의 부패를 소재로 한 이야기들이 많이 눈에 뜨인다아마도 포송령은 당시 관료제도의 모순과 부당함을 이 이야기들을 통해 드러내고자 했던 것 같다.

 

  실력 있고 똑똑한 선비인 ‘가봉치’라는 인물이 관리들의 욕심과 부패로 항상 낙방하게 되는 이야기인 「가봉치」는 오히려 졸렬한 문장을 써내고 과거에 합격하게 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관리들의 무능력부정부패과거제도의 모순을 통렬하게 비판하고 있다또한 「비정」이라는 이야기에서는 ‘주생’이라는 인물의 대사를 통해 “잘잘못은 어떻든 권력 있는 놈이 이기는 세상이니흑백을 가릴 것도 없잖은가더욱이 오늘날의 관공리들은 거의가 강도 같은 놈들이고 총칼을 휘두르지 않는 놈이 없지 않은가?”라고 하여 직설적으로 표현하는가 하면「청렴한 관리」라는 이야기에서는 ‘당시 관기는 극도로 문란하여다음과 같은 폐풍이 천하를 공공연하게 횡행하고 있었다즉, 오직 관리가 공금으로 사복을 채우고 횡령죄를 범하면상관은 으레 그 범죄 사실을 은폐해 주고 횡령한 금액을 동료들에게 분배하여서 범죄 사실을 세상에 폭로하지 못하도록 하였다.’라며 노골적으로 관료사회에 대한 불만을 드러낸다이는 비단 명 시대 때의 문제만이 아니라 사실 중국 사회 내의 구조적으로 이어져 내려온 관료제도의 모순이라 할 수 있다당시 관리들의 부패와 비리로 인해 일반 서민들이 얼마나 많은 부당한 폐해를 받았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있는 대목들이다.

 

  아마도 이야기 속 ‘과거제’에 대한 비판은 저자 포송령의 경험에 의한 반영이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포송령은 그 자신의 이력을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십 구세부터 과거시험에 참가해 세 번이나 시험에 일등 하여 한때 이름을 날렸었다그러나 그는 향시에는 급제하지 못해 관료로서 활동하지 못하고 학생을 가르치다가 세상을 떠났다『요재지이』의 내용과 그의 문체에서도 알 수 있듯이 포송령의 글은 개성이 무척 강하다따라서 당시 봉건사회 관료들에게는특히 문치주의가 강했던 중국 사회 내에서는 포송령의 글이 받아들여지기 힘들었을 것이다당시 일반인들에게는 사실상 과거제도의 응시 기회조차 주어지지 못했으니 이는 일반 서민들이 공유하고 있던 문제점이라기보다포송령과 같은 식자층들이 공유하고 있던 문제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다당시 과거제도의 엄격함폐쇄성은 포송령에게 모순덩어리바꾸어야 할 제도였을 것이다.

 

  이러한 당시 관료사회의 부패상은 이야기「귀뚜라미 싸움」에서 절정을 이룬다이 이야기는 백성들에 대한 착취가 단순히 지방 관리에 의해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황제로부터 비롯되어 봉건지배 계층에 층층이 내려오는 구조적 모순임을 밝히고 있다당시 황제는 귀뚜라미 싸움을 구경하길 즐겼고이에 관리들은 황제에게 잘 보이기 위해 귀뚜라미 잡기에 혈안이 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이 과정에서 지방 관리들은 강압적으로 서민들을 억압한다결국 귀뚜라미로 변한 자신의 아들을 관가에 바치는 ‘성명’이라는 인물은 이러한 억압 통치의 최대 피해자이며그런 성명에게 황제는 수많은 전답을 하사하여 그를 잘 살게 하였다는 것은 당시 통치자가 얼마나 우매하고 어리석은지에 대한 비판이라 할 수 있다.

 

  『요재지이』는 아마도 그 당시 봉건정치의 폐단 아래에서 고통받은 민중들에게 삶을 위로하고 대리만족을 느끼게 해 주었던 작품이었을 것이다대부분의 이야기가 그래도 인과응보적인 결말을 맺고 있고또한 이러한 부패한 관료들의 이야기만이 아닌 청렴하고 현명한 관리들의 이야기를 통해 사회의 밝은 면을 조명한 것도 바로 그러한 이유일 것이다.

 

 

사랑 그리고 여성상

  『요재지이』는 사실 대부분이 인간과 귀신 사이의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다. 어떻게 보면 어느 시대든지 남녀 간의 사랑 이야기는 항상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인 것 같다비록 사랑이라는 것은 남녀의 개인사에 가깝지만 이 책에서는 이것을 통해서도 당시의 시대상을 엿볼 수 있는 대목들이 무척 많다예를 들면 소설 속의 여성들은 내가 알고 있는 당시의 여성들보다 훨씬 더 자유롭고 과감하게 보인다는 것이다이것은 오히려 그 시대상의 반대 경우를 설정함으로써 그렇지 못하는 현실을 비판하고 은근히 그러한 여성상을 바라는 당시의 표현이었을까이는 귀신 혹은 요괴로 등장하는 것은 대부분이 여성이라는 사실을 보아도 알 수 있다요괴라는 비현실적인 등장인물이 여성으로만 주로 표현되었다는 것은 이야기 속 여성들의 행동이 사실은 실제 현실 속에서 그러지 못하는 비현실성을 갖고 있음을 달리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야기 속에선 때로는 덕과 재능을 겸비한 능력 있는 여성을 등장시켜 문제를 지혜롭게 해결하기도 하고한편으로는 무능한 남자를 잘 이끌어 성공시키게 하는 진취적인 모습을 담고 있기도 하다등장인물들의 과감한 애정 표현도 서슴지 않고 묘사된다이는 당시 중국 봉건사회의 억압받고 소극적인 여성상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아마도 이는 포송령이 꿈꾸는 건전한 여성상을 그대로 반영한 듯하며, 앞서 언급했든 저자는 이 이야기를 일반 사람들을 통해 구체화한 것이기 때문에 따라서 당시 시대가 꿈꾸는 여성상의 반영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그러나 이것은 당시의 시대에 비해서 이상적이었다는 뜻이지 그 자체로 완전한 여성상을 표현했던 것은 아니다그나마 현명하고 아름답게 표현되어 있는 이야기 속 인물들도 사실은 대부분이 남자 주인공의 성공이나 사랑 등을 위한 보조적인 역할을 할 뿐이다이것은 저자의 한계점이기도 하나‘남존여비’ 사상이 팽배했던 당시 시대적 한계이기도 하다또한 대부분이 여성의 외양적인 아름다움만 강조하고 있는 것도 한계점이라고 할 수 있다.

 

 

도교의 매력

  『요재지이』의 각 이야기 속에는 전반적으로 그 사상적 배경에 도교가 자리 잡고 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한국의 고전 소설 『구운몽』도 부분적으로 도교의 색채가 있긴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불교적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에 비할 때 조금은 특징적인 것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이는 당시의 청나라 사회에서 도교가 성행했었기 때문으로 볼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당시 지배적인 사상이었는가 하는 것은 좀 더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저자인 포송령이 단순히 도교에 대해 더욱 매력적으로 느꼈기 때문에 이야기 속에서 도교에 대한 많은 표현을 이루어낸 것일 수도 있다. 단순 확대 해석하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긴 해도적어도 도교가 당시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흔하게 입에 오르내릴 만큼 성행하고 실제로도 도교에 귀의하는 사람이 있었을 정도로 유행했던 것만큼은 사실로 보인다.

 

  그렇다면 당시 사회적인 시각에서 도교는 어떤 매력이 있었을까그건 아마도 당시 청나라 사회에서 팽배했던 유교주의에 대한 염증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요재지이』에서는 주로 인간이 신선이 되어 가는 과정을 소재로 한 이야기가 많고그 밖에도 선인신선호선(胡仙)으로 대변되는 도교의 궁극적 인간상을 통해 시공간을 초월하는 기이함신비함을 소재로 한 이야기가 대부분이다한 가지 특징적인 것은 도교는 불교와 유교와는 달리 자유로운 사상즉 '자유분방'하다는 데에 있다.「날아간 금팔찌」라는 이야기에서는 한 여자를 얻고 입신양명하기 위해 과거 시험에 매달리는 ‘오균’이라는 인물이 신선이 된 친구를 만나 꿈을 통해 천상세계의 열락을 잠깐 맛보고 미련 없이 그 꿈을 포기하고 신선이 되기 위해 떠난다지금에 와서도 이 같은 내용은 조금 이상해 보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이것은 ‘예’를 중심으로 하는 유가의 도덕적 보수성에 지친 당시 사회에서 이를 숨기기보다 자신의 감정과 쾌락적 본능에도 솔직해지자는 문제 제기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즉 도교는 그런 사상적 측면을 보조할 수 있는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그러나 「벽을 드나드는 사나이」의 ‘왕’이라는 인물을 통해서 단순한 욕심과 인내 없음은 경계해야 한다고도 필자는 말하고 있다.

 

 

기이한 세상기이한 이야기

  지금까지 『요재지이』의 전반적인 내용과 그 속에서 살펴볼 수 있는 당시 시대상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관료사회와 사랑이야기그리고 도교적 내용 등의 소재와 이야기가 많긴 하지만, 사실 시대상의 반영이라는 측면에서 이야기를 이끌어가서 그렇지, 순수하게 요괴와 인간의 사랑또는 선비 간의 우정을 그린 이야기들도 많이 있다그만큼 이 책의 이야기는 방대하다.

 

  마무리하면서 한 번 생각해 본다.『요재지이』요재가 기록한 기이한 이야기기이하다는 것이 과연 요괴귀신여우 등이 나오기 때문일까그러나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이런 이물들은 오히려 인간보다 더 순수하고 사람의 면모와 성격을 가지고 있다그들은 인간보다 더 인간적이다.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요재가 하는 기이한 이야기란 사실 중국 사회 내의 부정부패와 악습그러고도 평생 호의호식하는 관리들과 서민들을 규정하는 유교주의의 보수성즉 이 기이한 세상을 설명하기 위해서 기이한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는 저자의 토로(吐露) 일지도 모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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