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고도(千年古都) 경주, 첨성대를 찾다
'24년 무더운 여름이 시작되기 전, 아이들과 경주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천년고도' 역사의 도시, 경주에서 교육용(?) 여행이라는 부푼 꿈을 안고 출발했지만 실상은 아이들과 그저 놀고, 먹기 바빴다는.. 집으로 돌아가기 하루 전날 저녁, 어김없이 아이들과 먹거리를 즐기기 위해 찾아간 '황남시장'(경주에서는 '황리단길'로 불린다죠.)에서 택시를 타고 다시 숙소로 돌아가던 중 저 멀리 어둠 너머로 어딘가 익숙한 실루엣을 발견했습니다.
아! 맞다! 첨성대를 봐야 하는데..
집에 돌아가는 날 일정은 기차 시간도 있고, 미리 정해놓은 스케줄 때문에 사실상 첨성대를 들리기 어려운 코스였지만, 저 멀리 어둠 속에 홀로 서 있는 첨성대를 보니 다른 일정을 포기해서라도 억지로 찾아가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사실은 자세히 보면 홀로 서있지는 않았고... 야간에도 관광객들이 좀 있었던 것 같기도...;;)
대한민국 사람이면 누구나 잘 알겠지만, 경주 첨성대는 신라 시대에 세워진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대 중 하나로, 한국의 중요한 역사적 유물입니다.(국보 31호) 하늘을 관측하고 천문 현상을 연구하기 위해 만들어진 건축물로, 당시 신라의 과학 기술 수준과 하늘에 대한 깊은 이해를 엿볼 수 있는 중요한 문화재입니다. 첨성대(瞻星臺)의 뜻은 한자로 '첨(瞻)'은 '보다' 또는 '관측하다'를 의미하고, '성(星)'은 '별'을, '대(臺)'는 말 그대로 '대', '탑'을 뜻합니다. 따라서 첨성대는 '별을 관측하는 대', 즉, 하늘의 별을 관측하기 위해 세워진 탑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역사와 건축적 특징
다음날 오전, 직접 찾아본 첨성대는 제법 웅장하고 위압감이 있었습니다. 첨성대는 높이 약 9.17m, 기초부 지름 약 5.17m, 상부부 지름 약 4.16m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각의 돌들은 각지면서, 전체는 곡선 형태를 띠고 있어 전체적으로 고풍스럽고 우아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첨성대는 총 27단의 석재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는 신라의 27번째 왕이었던 선덕여왕을 상징한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실제로 첨성대는 7세기 중엽, 즉 신라 선덕여왕 대에 건립되었다고 삼국유사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한, 첨성대의 구조는 하늘의 별자리를 관측하는 기능을 고려한 설계로, 중간에 있는 네모난 창문은 내부로 들어오는 빛을 통해 하늘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이는 당시 신라 사람들이 천문 관측을 통해 농사와 국가 정책을 조율하는 데 천문학을 얼마나 중요시했는지를 보여줍니다.
숨겨진 이야기와 상징성
첨성대에 얽힌 여러 가지 숨겨진 이야기도 있습니다. 한 가지 유명한 이야기는 첨성대가 단순한 천문대의 역할을 넘어서 신라의 왕권을 상징하는 건축물이었다는 주장입니다. 선덕여왕은 신라의 첫 여성 군주로서, 그녀의 통치 기간 동안 왕권을 강화하고 국가를 통합하는 여러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첨성대의 건립도 이러한 맥락에서 해석될 수 있으며, 하늘의 질서를 파악하고 이를 통해 지상의 정치적 질서를 확립하려는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합니다.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는 생각도 드는 것이, 보통의 천문 관측은 기술이 발달한 요즘에도 지리학적으로 산처럼 높은 곳에 위치하기 마련인데 직접 가 보고 느낀 거지만, 햇빛 하나 가릴 게 없는 평지에 있다는 것이 조금은 의아합니다. 즉, 왕궁 근처 평지에 건설하여, 국가의 과학 수준을 과시하는 일종의 선전용, 혹은 제단, 기념비 적인 용도가 아니었을까 하는 설도 어느 정도 흥미 있는 이야기처럼 보입니다. (들어가 보지는 못하지만, 실제로 천문을 관찰하기에 첨성대 내부가 좁고 불편하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다만, 이는 말 그대로 '설', 추측일 뿐, 문헌적인 증거는 없는 것으로 여러 문헌에 기록된 통설과 연구 기록을 보면 어쨌든 첨성대는 천문대로서의 기능을 갖고 있는 것이 정론이라 하겠습니다.
또한, 첨성대의 건축 방식에서 신라 사람들이 숫자와 우주에 대한 신비로운 이해를 표현하려 했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첨성대의 구조는 12 지신을 상징하는 12개의 돌로 쌓은 기단과 362개의 돌로 쌓아 올린 본체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는 당시 신라인들이 태양력과 음력을 결합하여 사용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로 여겨집니다. (첨성대에 쌓인 전체 돌의 개수, 362개는 예전 무한도전에도 문제로 나왔었죠. 무도 팬이라면 기억할 '경주특집')
마무리하며
경주 첨성대는 그 자체로 신비와 역사를 간직한 채, 오래 세월 동안 한국의 수많은 역사적 순간들을 견뎌낸 상징적인 건축물입니다. 관광객들에게는 그 자체로 신비함과 경외감을 주며, 또 역사적으로는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여 신라에 대한 문화적 이해와 과학적 탐구의 출발점이 되고 있는 소중한 문화유산입니다.
비록 우리 아이들은 아직, 첨성대 주변을 돌아다니는 '비단벌레 열차'에 더 관심이 많았지만, 이러한 볼거리, 놀거리들이 역사와 문화를 조금 더 친숙하게 다가가게 만드는 하나의 중요한 요소라 위로하며 오늘 포스팅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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