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가 되면 생각나는 영화
매년 크리스마스가 되면 늘 생각나는 영화가 있다. '나홀로 집에', '러브액츄얼리'와 같은 겨울 시즌 단골 영화는 너무도 유명하지만, 크리스마스가 되면 나는 '패밀리맨(The Family Man, 2000 作)'이라는 영화가 제일 먼저 떠오른다. 사실 이 영화를 접하게 된 건 되게 우연이었다. 대학교 1, 2학년때 쯤이었나? 어렸을 때 재밌게 봤던 '잭 프로스트(Jack Frost, 1998 作)'를 다시 보고 싶어졌는데, 당시 영화 제목이 너무 떠오르지가 않아 이것 저것 생각나는 대로 검색을 하다보니 패밀리맨이라는 영화를 찾게 된 것이다. 찾던 영화는 아니었지만,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니콜라스 케이지는 나름 내 기준에서는 '흥행 보증수표'와도 같은 배우였기 때문에 한번 봐야겠다는 흥미가 들었다. 어렸을 때부터 '더록', '페이스오프', 그리고 '내셔널트레져'와 같은 그가 나온 영화들을 너무 좋아했었고, 영화를 본 후 나만의 '크리스마스 영화 List' 최상단에 패밀리맨을 올려놓게 되었다.
겨울과 크리스마스, 그리고 '기적'같은 이야기
크리스마스에 떠오르는 영화들은 대부분 (당연하지만) 배경은 겨울이고, 크리스마스 시즌을 전후한 이야기들이다. 그렇지만 정말 단순히 '겨울'과 '크리스마스'를 배경으로 한다고 해서 크리스마스 영화로 기억에 남는 건 아니다. 개인적으로는 한 가지가 더 추가되어야 '크리스마스 영화'로서 진정한 자격을 얻는다고 생각하는데, 그건 바로 '기적'이라는 이야기 요소이다. 몇 가지 나의 크리스마스 영화 리스트를 살펴보면 '잭 프로스트'는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주인공이 크리스마스 날 아들이 만들어 놓은 눈사람으로 환생해서 돌아오는, 듣기만 해도 기적과 같은 이야기이고, 리스트에 있는 또 다른 크리스마스 영화, '세렌디피티(Serendipity, 2001作)'를 봐도 크리스마스 어느 날 우연히 만난 남녀가 서로를 기억하고 7년 뒤 여러 우연과 노력을 거쳐 말도 안되는 확률로 서로 다시 만나 사랑하게 되는 이야기이다. 이처럼 크리스마스에는 마법과 같은 '기적'의 스토리가 영화의 큰 요소로 자리 잡는다.
이 영화, 패밀리맨은 어떤 기적이 영화 속에 숨어 있을까. 영화 속 이야기의 첫 장면은 사랑하는 두 남녀의 이별에서 시작된다. 잭 캠벨(니콜라스 케이지 분)은 영국의 유명한 금융계(은행) 인턴으로 취업을 하게 되고, 로스쿨에 합격한 연인 케이트 레이놀즈(티아 레오니 분)와 공항에서 작별인사를 하고 있다. 잭이 떠나기 직전, 케이트는 뭔가 잘못되었다고 생각을 했는지 가지 말고 '우리가 함께하는' 선택을 하자며 잭을 잡는다. 그러나 잭은 결심한듯 아쉬운 작별을 하며 비행기로 향한다. 그리고 13년 후, 잭은 경제 채널을 틀어놓고 침대에서 신문을 읽고 있다. 그리고 케이트가 아닌 다른 여자가 침대 옆에서 옷을 갈아 입고 있다. 펜트하우스의 넓은 집, 페라리, 비싸 보이는 양복과 넥타이들. 잭은 한 투자전문 회사의 사장이 되어 있었고, 크리스마스 연휴까지 일에 몰두하는 지독한 워커홀릭에 빠진, 성공만을 위해 달리는 남자가 되어 있었다. 크리스마스 이브 마침 오래 전 연인 케이트의 메시지가 남겨져 있었음에도, 그는 잠깐 옛 남자가 생각났을 거라며 굳이 전화해서 오해 살 필요가 없다고 케이트의 연락을 외면한다.
늦게까지 일을 하다 어느 편의점에 들린 잭. 그곳에서 우연히 복권을 바꾸려다 이를 가짜라고 무시한 편의점 직원과 시비가 붙은 캐쉬(돈치들 분)를 만난다. 총까지 꺼내들고 흥분하며 자신의 복권이 진짜라 말하는 캐쉬에게 잭은 기지를 발휘하여 본인이 그 복권의 당첨 금액을 지불할테니 자신에게 팔라고 이야기하며 캐쉬를 진정시킨다. 하지만 그런 잭 역시 편의점을 나와 캐쉬에게 도움이 될 만한 프로그램 같은 것을 받는게 어떠냐고 그를 무시하는 듯한 말을 하며 누구에게나 필요한 것이 있으니 도움을 받으라고 권유한다. 정작 본인은 필요한게 없다는 잭의 말을 가만히 듣던 캐쉬는 '이건 당신이 선택한 일'이라며 의미심장한 말을 남긴채 자리를 떠난다. 이후 집에 돌아와 침대에서 잠이 든 잭, 다음날 아침 잠에서 깬 잭은 전혀 다른 세상을 마주한다.
케이트를 선택한 삶
잠에서 깬 잭은 자신의 옆에 누워있는 케이트를 발견한다. 갑자기 아이들까지 들어와 더 정신이 없다. 일단 무작정 밖으로 나가 본인이 살았던 펜트하우스와 직장을 찾아가 보지만 모두 다 들어가지도 못하고 문 앞에서 쫓겨난다. 어리둥절하던 그때 캐쉬가 잭의 페라리를 타고 나타나 '어제의 일로, 윗 분들이 조금 감동하셨고, 그래서 새로 살아볼 기회를 드리겠다'라고 이야기한다. 무슨일인지 도무지 이해가 안되지만 잭은 어쨌든 다시 케이트가 있는 집으로 돌아온다. 조금씩 상황 파악을 해보던 그는, 현재의 삶이 케이트와 작별하던 그 순간 유망한 금융계 인턴을 택한 삶이 아닌, 케이트를 택한 삶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사랑했던 그녀였지만 모든 것이 만족스럽지 못하다. 자신 소유의 펜트하우스에서 멋진 여성과 하룻밤 잠자리를 하며 잘나가던 그가, 아이의 기저귀를 가는 일부터, 조그만한 직장으로 출근하는 모습, 그리고 양복 한 벌을 사려고 해도 비싼 옷이라며 구박하는 케이트까지.. 공익 변호사로 일을 하는 케이트 역시 수입은 변변치 못했다. 화가 나 케이트와 싸우기도 하지만 결국 조금씩 이 삶에 적응해간다. 왜 본인이 증권가에서 일하다가 뉴저지 변두리로 이사와 장인의 타이어 가게에서 일하게 되었는지, 케이트와 소소하게 챙기는 결혼기념일, 그리고 아이들과의 시간, 본인은 기억하지 못하는 13년 동안 케이트와의 추억들도 사진과 영상을 통해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된다. 우연치 않게 이전 삶의 직장 상사였던 회장이 타이어 가게에 들어와 잭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고, 잭을 마음에 들어한 회장이 잭에게 스카웃 제의를 하지만, 현재의 삶, 즉 케이트를 선택한 지금의 삶에 예상치 못한 행복함을 느낀 잭은 이 제의를 거절하며, 케이트가 13년 전 얘기한 '우리가 함께하는 삶'을 선택한다. 잭과 함께 재미나게 눈 속에서 뛰놀던 첫째 애니는 그제서야 아빠가 돌아왔다며 미소짓는다. (애니는 이전 낯선 아빠의 모습을 보고, 우리 아빠가 아니라 외계인이죠?라고 이야기 한바 있다.)
우린 뉴저지에 집이 있어
다시 잠에서 깬 잭은 펜트하우스 자신의 침대에서 일어난다. 멋진 여성이 집으로 찾아와도 관심은 없다. 케이트를 선택한 삶에서 살았던 뉴저지로 다시 찾아가보지만, 그곳에 있는 사람은 모르는 사람 뿐이다. 케이트에게 연락이 왔었던 것을 생각한 그는 케이트의 주소를 알아내 찾아간다. 혹시나 모를 기대감을 갖고 찾아간 잭. 그러나 케이트는 잘나가는 변호사가 되어 있었고 파리에 있는 회사로 가게 되었다고 이야기한다. 공익 변호사로 일하지 않느냐는 말에 '그 돈으로 어떻게 일을 하냐'며 되받아 친다. 케이트는 본인이 갖고 있었던 잭의 물건을 주기 위해 연락을 했었던 것이다. 커피 한 잔 하자는 말에 잭에게 물건을 건내주며 나중에 파리에 오면 같이 한 잔 하자며 돌려 보낸다.
곰곰히 생각에 잠긴 잭. 케이트가 준 예전의 물건 속에서 같이 찍은 옛 사진을 찾아내고 케이트를 다시 만나기 위해 공항으로 향한다. 비행기 탑승 전 극적으로 만난 두 사람. 잭은 다시 커피 한잔만 하자고 이야기 한다. 당황하는 케이트는 혹시 정리가 필요하냐며, 예전엔 마음이 아팠지만 지금은 괜찮다고 이야기 한 뒤 다시 탑승 게이트로 향한다. 돌아가는 케이트를 보며 포기할까 망설이던 잭은 용기 있게 소리쳐 첫 마디를 꺼낸다. '우린 뉴저지에 집이 있어!' 이후 잭은 13년 전 케이트를 선택한 삶, 그리고 자신이 포기했던 삶에 대해 이야기 한다. 어쩌면 모두 꿈이었을지 모른다고, 어쩌면 외로운 12월에 혼자서 해본 상상일지도 모른다고, 그렇지만 그 보다 현실적인 것은 없었다고. 그래서 난 우리를 택하겠다고 잭은 말한다.
마지막 장면은 이 영화의 첫 장면, 케이트가 '우리를 택하자'고 하며 런던으로 가지말라고 잭을 붙잡던 모습과 대조를 이룬다. 딱 커피 한잔만 하자며 케이트를 붙잡는 잭. 과연 영화 속에서 케이트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그리고 이후 그들의 삶은 또 어떻게 바뀔까. 결말에 대한 여러가지 행복한 상상을 하게되는 이야기. 아직 안 본 사람이 있다면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기적과도 같은 영화 패밀리맨을 추천한다. (PS. 이 영화속 여주인공도 너무 '기적'같은 매력을 갖고 있는 배우이다.)
'영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파이란, 삼류를 '사랑'이라 부르는 하얀 난초 (2) | 2024.06.07 |
---|---|
모가디슈(Mogadishu), 냉전과 내전 속 그 어딘가에 위치한 도시 (0) | 2024.06.01 |
아라한 장풍대작전, 통쾌한 현대판 무협 액션 (0) | 2021.12.27 |
돈 룩 업(Don't Look Up),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기 (0) | 2021.12.26 |
바람(Wish), 남자들의 뜨거웠던 학창 시절 이야기 (0) | 2021.12.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