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과 내전 속 그 어딘가
'모가디슈(Mogadishu)'라는 낯선 단어만큼이나 생소한 이 이야기는 역사 속 실화를 바탕으로 극화한 류승환 감독의 11번째 영화이며, 1991년까지 소말리아 현지에서 대사로 근무하다가 내전 발발 후 모가디슈를 탈출한 강신성 대사의 실화를 모티브로 한다. 영화에서는 성이 다른 '한신성'(김윤석 분) 대사관으로 표현된 이 인물은 소말리아 내전이 일어난 후 남북한 대사 일행을 이끌고 생사를 넘어 모가디슈를 탈출한다. 왜 머나먼 타국, 그것도 소말리아라는 최빈국에서 남과 북이 만나 생사를 같이하게 되었을까.
영화 모가디슈는 해안을 끼고 있는 동아프리카 소말리아의 수도라는 지정학적 위치보다, '냉전과 내전 속 그 어딘가'에 위치한 정치학적 의미로써의 모가디슈를 더 와닿게 해주는 영화이다. 냉전 시대 말미 UN가입을 위한 회원국들의 지지가 필요했던 남한과 북한은 각자의 방식으로, 또 조금은 비겁한 방법으로 서로를 견제해간다. 대한민국보다 약 30년이나 앞서 UN 회원국으로서의 입지를 갖고 있었던 소말리아 역시 주요하게 포섭해야할 나라 중 하나였고 이 소말리아의 수도 모가디슈에서 남한의 대사 한신성과, 안기부에서 좌천된 강대진(조인성 분), 북한의 대사 림용수(허준호 분), 북한 측 참사관 태준기(구교환 분)가 만나 치열한 외교전과 신경전을 벌인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국가 내전으로 이야기는 다른 국면으로 전환된다. 대사관까지 공격당하며 도망치듯 밖으로 나온 북의 림용수 대사관과 직원들은 그나마 적은 경비병들이라도 갖춘 남한 대사관 앞에 서자 애원하듯 도움을 청한다. '갈곳이 없소'
연출과 프로듀싱의 승리
모가디슈를 보면 연출과 화면의 구도, 배경, 색감, 소품 등 영화의 전체적인 미장센이 전혀 이질감 없이 다가온다. 전문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영역은 아니지만 일반 대중의 눈 높이에서 봤을 때 어색하다거나 어설프다는 느낌이 없다. 낯선 이국 땅에서 느껴지는 생소함, 시대적 배경이 갖고 있는 옛스러움, 정치적 상황이 가져다 주는 긴장과 불안감이 장면 장면에서 그대로 느껴진다. 특히 놀라웠던 것 중 하나는 대게 단역 또는 엑스트라인 아프리카계 배우들의 연기에도 크게 어색함이 없다는 부분이다. 또한 이태리 대사관 등 다국적 인물이 영화 속에 등장하는 데 그렇게 다양하고 많은 인력들을 어떻게 섭외했으며, 내전을 표현할 때 전체적인 구도를 이끌어내기까지 얼마나 많은 현지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했을지 생각해보면(영화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들었던 궁금증이기도 하다) 류승완 감독의 연출과 현지 프로듀싱이 얼마나 철저하게 준비되어 왔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Well-Made 영화
모가디슈 영화의 최대 강점은 불필요한 감정선 및 신파로 억지 감동을 짜내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억지로 즙을 짜내는 영화는 질색이다.) 뿐만 아니라 이야기 속도, 갈등, 감정 고조, 결말 등 모든 면에서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적절한 수준에서 극이 전개된다. 액션에 있어서도 텐트폴 영화로서, 특히 요즘과 같은 코로나 환경에 조금 더 대중의 이목을 끌만한 더 화려한 액션을 담아낼 법도 한데, 개인적으로 느끼기에 지루하지도 반복되지도 않은 딱 보기 좋은 수준에서 정도 있게 담아낸 느낌이다. 후반부 비중있게 전개된 카체이싱은 어색함과 지루함이 가득했던 '반도(연상호 감독, 2020)'의 카체이싱과 비교했을 때 더 리얼하고 컴팩트하게 담겨져 영화의 말미를 더 완성도 있게 마무리했다. (구교환 배우 때문인지 '반도'라는 영화가 갑작스레 떠올라 비교되었다.)
배우들의 연기도 그렇다. 주요 배우 넷 모두 연기 및 대립 구도의 밸런스가 너무 좋다. 조인성 배우가 원래 조금 힘이 들어간 스타일의 연기를 하는 배우이긴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약간의 힘이 들어가 있는게 안기부 출신의 극 중 캐릭터 강대진을 잘 표현해낼 수 있어 어울리는 부분이기도 했다. 김윤석 배우야 늘 기본 이상을 해주는 배우이고, 한참 떠오르는 색깔있는 느낌의 구교환 배우 그리고 허준호 배우가 주는 선굵은 연기는 더 할 수 없이 매력적이다. (영화 '국가부도의 날' 이후 개인적으로 허준호 배우의 연기가 너무 마음에 든다. 나이가 들수록 더 진해지는 느낌이랄까.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저음의 목소리 톤에서부터 느껴지는 캐릭터에 대한 진정성이 느껴진다.)
'이제부터 우리의 투쟁 목표는 생존이다.' 라는 극 중 허준호 배우의 대사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남과 북의 대립 속에 각자의 방식으로, 각자의 목표를 위해 살아온 그들이 이제 '생존'이라는 같은 목적을 위해 마음을 모은다. 마지막 결말까지도 절제있게 담아낸 모가디슈. Well-made로 남을만한, 오랜만에 나온 한국 영화의 수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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