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향수를 강하게 자극하는 추억 영화
어린 시절을 추억하게 하는 영화들이 있다. 내게 이런 향수를 진하게 자극하는 영화가 바로 '후크(Hook, 1992년작)'이다. 후크를 처음 본 것은 1994년 정도로 기억한다. 외국 영화를 접하기가 쉽지 않았던 국민학생(?) 시절, 유일하게 애타게 기다리던 시간은 주말의 명화(MBC)와 토요명화(KBS)가 하는 시간이었고 (아직도 토요명화의 Opening 영상을 보면 가슴이 웅장해진다.) 그때 처음으로 이 영화를 만났다. 당시에 운이 좋겠도 아버지가 막 집에 비디오를 들였던 터라, 공 테이프로 녹화를 떠 놓아서 이후에 집에서 심심할 때마다 이 영화를 다시 보곤 했었다. 어른이 되기 싫어 자라지 않기로 마음 먹은 아이들과 해적들로 가득찬 네버랜드, 상상을 하면 뭐든지 먹을 수 있는 맛있는 음식들, 행복한 생각을 하면 날 수 있게 해주는 요정 가루(아무나 쉽게 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해적들과의 대결 등 어릴 때는 단순하게 신나고 재밌는 소재에 매혹되어 뭔가에 홀린 것처럼 마냥 돌려보기를 반복했다.
왜 피터팬이 아니고 '후크'인가
후크는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알고있는 이야기 '피터팬'을 모티브로 한 영화이다. 제목 그대로 후크는 이 영화 속 주요 등장인물이긴 하지만(실재로 후크 선장 역의 더스틴 호프만 배우가 영화 캐스팅 상으로 첫번째로 올라와 있다), 사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여전히 피터팬이다. 그럼에도 영화 제목이 '후크'인 이유는 피터팬 본인이 피터팬인지 모르고 살아가는 어른 '피터 배닝'과 복수를 위해 피터팬의 아이들을 납치해가는 '후크 선장'의 협박장으로 이야기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본인의 진짜 모습을 잊고 살아가는 영화 속 주인공 피터팬(로빈 윌리암스 분)의 부재와 피터팬의 또 다른 이 이야기가 후크 선장의 도전으로부터 시작되는 사실을 영화 제목에서부터 상징하고 있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어떤 계기로 인해 어른이 되기로 마음먹고 변호사가 된 피터 배닝, 그는 본인이 하늘을 자유롭게 날던 피터팬이었다는 사실도 잊어버린 채 현실 속을 살아가고 있다. 너무나도 바쁘게 살아가는 일상 속에, 피터 배닝은 아들의 야구시합에 오겠다는 약속도 지키지 못하고 일에 치어 살아간다. 비행기를 타면 고소공포증까지 느낄 정도로 모든 걸 잊고 살아가던 피터 배닝은 어린 시절 자기를 걷어 키워준 웬디의 고아병원 개원식에 찾아가면서 이야기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웬디와 웬디의 손녀이자 피터배닝의 아내인 모이라는 아이들을 집에 남긴 채 병원 개원식에 가게 되고, 이 사이 후크 선장이 피터팬의 아들 잭과 매기를 납치해간다. 요정 팅커벨(줄리아 로버츠 분)의 도움을 받아 네버랜드로 넘어간 피터 배닝, 어렵게 후크 선장을 만났지만 아이들을 눈 앞에 두고도 구해내지 못하고 위기를 맞는다. 팅커벨이 기지를 발휘하여 3일의 시간을 주면 피터팬의 기억을 되찾아 다시 대결하러 돌아오겠다 후크 선장과 약속하고, 피터 배닝은 어린 시절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3일 동안의 훈련과 '기억 찾기'에 들어간다.
피터 배닝의 행복한 생각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조금씩 어린 시절의 감각을 찾아가던 피터팬이었지만 기억이 돌아오는 건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요정 가루를 받아 행복한 생각을 하면 날 수 있다고 했지만, 나는 것 또한 쉽지 않다. 어린 시절 추억을 따라 후크 선장의 갈고리를 훔치러 간 피터팬과 친구들은 그곳에서 피터팬의 아들 잭을 위해 야구 시합을 열어주는 후크 선장을 목격했고, 잭이 홈런을 치자 '나의 잭!'이라 외치는 후크 선장을 보며 피터팬은 큰 충격에 빠진다.
피터팬은 아빠로서 아들의 야구시합도 찾아가지 못했던 지난 날과 눈 앞에서도 아이들을 구하지 못했던 무능함, 도무지 기억나지 않는 어린시절 등 복잡하고 혼란한 마음이 최고조에 오르고 이 순간 잭이 쏘아올린 홈런 볼에 머리를 맞은 뒤 어린 시절 본인과 마주하기 시작한다. 도망가는 그림자를 따라 들어간 곳에서 팅커벨의 도움을 받아 조금씩 어린 시절 기억을 더듬어 낸 피터팬은 어린 시절 어떤 연유로 부모로부터 도망쳐왔는지, 왜 어른이 되기로 결심했는지, 그리고 자신이 배닝이 아닌 피터팬이었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닫고 네버랜드의 높은 하늘로 치솟아 날아오른다.
영화의 이야기는 후크 선장과의 대결이라는 클라이막스로 향하게 되고, 친구들과 함께 자식들을 구하러 간 피터팬은 아이들을 보며 다시 본인을 날 수 있게 해준 '행복한 생각'은 바로 '잭과 매기, 너희들'이라고 이야기 한다.
꿈 같았던 '네버랜드'
녹화해두었던 공테이프로 심심할 때마다 그렇게 돌려보던 이 영화도 1-2년 뒤, 다른 것들을 녹화로 덮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잊게 되었다. 점차 비디오 산업이 하향 산업으로 접어들면서 동네에 있는 비디오 가게들이 하나 둘씩 문을 닫기 시작했는데 고등학교 3학년쯤 되었을 때, 점포 정리를 한다고 문밖에 내놓은 동네 비디오 가게 앞에서 여러 비디오 테입 중 유난히 눈에 띄던 후크 선장을 다시 만났다.
사실 이 영화의 뒷 이야기는 조금 뻔하다. 그럼에도 후크를 내 인생의 명작, 늘 다섯 손가락 안에 꼽는 영화로 두는 이유는 나이가 들어 다시 볼 때마다 늘 다른 감정으로 다가오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때 비디오 테입을 사서 다시 본 후크는 너무 슬펐다. 영화는 여전히 유쾌하고 재밌었지만, 영화 자체가 슬펐다기 보다 그 영화를 보면서 볼 때마다 매번 설레했던, 어릴 적 꼬마 아이가 너무 떠올랐기 때문이다. 더 이상 비디오 테입으로 볼 수 없는 시대가 되면서 이 또한 잊혀져 가다가 VOD 평생소장을 통해 후크를 또 구매했다. 30대에 다시 본 후크는 너무 행복하고 감사했다. 유년기 나에게 정말 네버랜드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정말 하늘을 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나쁜 악당들에게 유쾌한 공격을 날려주겠다는 꿈과 희망을 실어주었던 영화였고, 덕분에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구나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후크를 무찌른 피터팬은 아이들을 구하고 집으로 돌아갔고, 그 곳에서 팅커벨과 마지막 인사를 나눈다.
팅커벨 : 진지하게 말해봐 피터
피터팬 : 난 요정을 믿어
팅커벨 : 갔다온 곳이 어딘 줄 알겠어? 꿈을 꾸던 곳 말야. 거기서 널 사랑할 거야. 피터 팬.
그리고 거기서 널 기다릴 거야
40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니, 정말 꿈을 꾸었던 것처럼 기억조차 희미한 그 시절이 되어버렸다. 그래도 '어쩌면 네버랜드가 진짜 있지 않을까'라고 옛날의 추억을 되찾으려 이따금씩 이 영화를 다시 틀어보게 된다. 재미있고, 유쾌하고, 슬프지만 행복했던 영화, 후크(Hook)를 내 인생 최고의 명작으로 소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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