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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야기

서울의 봄, 잊어서는 안 될 대한민국 현대사

by Rail-road 2024. 6.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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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봄>, 이 영화가 주는 상징성

  여러 가지로 참 상징적인 영화다. 같은 내용으로, 심지어 캐릭터들의 대사까지 상당 부분 비슷한 포인트가 많았던 드라마 <제5공화국> (2005년도, 41부작)이 있었는데도 (다시 말해 다 아는 내용인데도) 개봉 33일 만에 1,0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최종 스코어 1,312만, 역대 개봉영화 9위, 한국영화로는 역대 6위를 기록하며 엄청난 흥행을 이루어냈다. (여담으로, 정우성 배우에게는 첫 천만 영화라고 한다.) 물론 영화적 스케일과 선 굵은 배우들의 캐스팅, 전후 관계의 긴 스토리라인 없이 '12.12'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압축적으로 담아내며 유례없는 몰입감을 주었던 긴장감이 드라마의 그것과는 분명하게 차별된 점이 있다 하겠지만, 어쨌든 침체되어 있는 현재 극장가에 활력을 불어넣은 그 스코어 자체만으로도 '상징적'이라 말하기에 충분하다. 영화 <서울의 봄>의 성공 비결은 과연 무엇일까. 

 

  '서울의 봄'은 1979년 '10.26' 사건으로 유신정권이 물러나고, 이듬해인 '5.18' 민주화 운동 전까지 민주화에 대한 희망으로 꿈이 부풀어 있던 시기를 뜻한다. 하지만 '서울의 봄'이라고 까지 표현한 그 시기는 아이러니(irony)하게도, 12.12 이른바 작정명 '생일집잔치' (영화 속에서는 '생일잔치'로 표현되었던 걸로 기억한다.)를 성공적으로 이끌어 낸 신군부에게 해당되는 말이었을 것이다. 영화 <서울의 봄>의 스토리는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마주할 때 피해 갈 수 없는 아픈 기억이며, 또 불과 50년도 안된 비교적 최근의 일이기에, 역사적, 정치적으로 수많은 논의와 해석이 있을 것이다. 그러기에 실재 이야기임에도 영화 속 인물들을 '전두광', '노태건'으로 표현할 수밖에 없는 시대적 한계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의 공감과 분노, 아쉬움 등 여러 감정을 복합적으로 느끼게 하는 점이 영화의 성공 비결이자, 이 영화를 '상징적'이라 에둘러 표현하는 진짜 이유이다.

 

역대급 캐스팅, 역대급 캐릭터(연기력)

  정우성, 황정민, 이성민, 박해준, 김성균 등 메인급 주연들 외에도 김의성, 정동환, 안내상, 이재윤, 김성오, 현봉식 등 화려한 조연들의 라인업, 특별출연이긴 하지만 엄청난 존재감을 보여줬던 정만식, 정해인, 이준혁 그 밖에도 한국 영화에서 늘 뜻밖의 신스틸러로 등장하는 영화감독이자 배우 황병국까지 단역들의 캐스팅도 실로 어마어마하다고 할 수 있다. <서울의 봄>이 한참 흥행 기록을 세울 당시 박정민 배우가 한 디지털 콘텐츠에 출현하여 <서울의 봄>과 관련된 에피소드를 밝힌 바 있는데, 박정민 배우를 오랜만에 본 지인이 <서울의 봄> 잘 봤다며 안부를 전했다고 한 일화는 너무 유명하다. (참고로 박정민 배우는 <서울의 봄>에 출연하지 않았다.) 그만큼 대한민국의 색깔 있고 개성 있는 배우들이 모두 출연했기 때문에 캐스팅된 배우들이 누가 있었는지도 헷갈리는 상황이 발생한 재미있는 에피소드이다. 반대로 '그 배우가 나왔었다고?' 하는 경우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극 중 '배송학' 중장으로 나오는 염동헌 배우가 사진을 뚫고 나올 정도로 실존 인물과 너무 똑같이 생겨 놀랐고, 이런 배우들의 캐스팅에 있어서 최대한 실물과 동일하게 연출하고자 했던 제작진들의 디테일에 다시 한번 놀랐다. (염동헌 배우는 영화 개봉 1년 전인 2022년 12월 간경화에 따른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전해졌다. <서울의 봄>이 그의 유작이 된 셈이다.)

 

(서울의 봄, 2023년 作)

 

 

  영화의 캐스팅만큼이나, 극 중 역대급 캐릭터들이 눈에 띈다. 역대급 캐릭터라고 하기에 대부분이 실존 인물이라는 게 더 놀랍다. 이는 이 캐릭터들을 살아 숨 쉬게 하는 배우들의 역대급 연기력 덕분일 것이다. 황정민 배우와 이성민 배우는 이미 연기력으로는 더 이상 말할 게 없는 배우들이다. 정우성 배우 역시 넘치는 카리스마를 자아낸다. <제5공화국>에서 '장태완' 수도경비사령관을 연기했던 김기현 배우(성우로 더 유명하다.)와 견주었을 때, 그 이상의 카리스마를 뿜어내며 영화 속 '하나회'와의 최후의 대척점으로서 극의 몰입감과 긴장감을 끝까지 끌고 가게 해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김성수 감독은 영화 <비트> (1997년 작)로 정우성 배우와 처음 연을 맺어, <태양은 없다>(1999년 작), <무사> (2001년 작), <아수라>(2016년 작), 그리고 <서울의 봄>까지 총 다섯 편을 같이 한 만큼 정우성이라는 배우의 사용법을 잘 아는 듯하다.

 

  '탱크 몰고 가서 대가리를 다 뭉개버리겠다'는 극 중 이태신(정우성 분)의 임팩트(impact) 넘치는 대사만큼이나, (임팩트는 좀 부족해도) 영화를 보고 난 후 계속 머릿속에 남는 대사들이 있다.

 

"대한민국 육군은 다 같은 편입니다." (이태신)
"어째, 내는, 이기 이기 해볼 만도 하다 카는 마음도 드네" (현치성)
"이 사단장 좀 믿어주세요." (노태건)
"사후 재가입니다." (최한규 대통령)

 

 

잊어서는 안 될 대한민국 현대사

  12.12 작전을 성공시킨 하나회는 축하연을 즐긴 뒤, 다 같이 모여 단체 사진을 촬영한다. 그리고 한 명, 한 명 그들이 이후 어떤 요직을 누렸는지 그 인물들을 조명하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극 마지막, 직급으로는 한참이나 낮은 부하들에게 비참하게 고문당하며 힘 빠진 목소리로 "전두광이 어디 있노" 라고 이야기하는 정상호 참모총장(이성민 분)과 매우 대조적이다. 호위호식하는 그 인물들을 엔딩으로 보며 명확히 느껴졌던 단 한 가지, '잊지 말자'는 감정이었다. 80년대 시위하다 감옥 간 젊은 청년들에게 '너는 뒤로 빠져라'라고 비겁한 교훈을 가르쳤던 우리의 역사, 이 역사를 청산해야 한다던 '어느 분'의 간곡하고 애절했던 연설이 생각나는 영화, <서울의 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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