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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야기

더 퍼스트 슬램덩크, 90년대 향수에 젖다

by Rail-road 2024. 6.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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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램덩크의 라스트(Last) 스토리, '더 퍼스트(First) 슬램덩크'

  90년대에 학창 시절을 보냈던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열광했던 만화, 바로 '슬램덩크'이다. 따로 설명이 필요 없는 자타공인 명작 만화이며, '드래곤볼'과 함께 일본 최고 레전드 만화로 항상 비교되며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이다. (개인적으로는 '드래곤볼'을 더 명작으로 꼽는다.) 첫 번째, 두 번째냐의 문제이지, '명작이다'라고 말하는 데에는 그 누구도 이견 없는 작품이지만, 연재 초반에는 '농구'라는 소재가 익숙하지 않아, 편집자가 작가(이노우에 타케이코)에게 '학원물'로 더 집중하길 권했다는 일화는 너무 유명하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 (The First Slam Dunk, 2023년 作)는 풋내기 '강백호'의 좌충우돌 농구 성장 스토리인 원작 만화 '슬램덩크'의 극장판 영화이다. 이 영화에서는 원작 슬램덩크의 마지막 상대이자, 마지막 에피소드였던 인터하이(전국대회)의 산왕전을 다루고 있다. 원작의 '마지막(The Last)'이었던 이 이야기가 '더 퍼스트(The First)'라는 제목으로 다시 나왔다는 것이, 슬램덩크의 팬들이라면 제목이 주는 궁금함과 아이러니를 동시에 느꼈을 것이다. 제목의 의미에 대해서는 '새롭게' 만나는 슬램덩크 이야기이다라는 설도 있지만, 제일 유력한 이야기는 '더 퍼스트', 즉, 1번이 농구에서 포지션을 얘기할 때 쓰는 '가드(PG)'를 의미하고, 이는 곧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가드인 송태섭의 이야기를 메인으로 다루게 될 것임을 암시한다는 설이 제일 유력하다. (작가인 이노우에와의 인터뷰에서 나온 이야기라는데, 실제로 official 하게 확인된 내용인지는 모르겠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 The First Slam Dunk, 2023년 作)

 

 

영화로써의 슬램덩크, 그리고 신드롬(Syndrome)

  극장에서 만난 슬램덩크는 어딘가 달랐고, 한 편으로는 충격이었다. 일단 영상미가 너무 말도 안 되었다고 해야 하나. '모션 캡처(Motion Capture)' 기법을 사용했다고 하는데, 원작 만화의 느낌은 또 그대로 살리면서도 애니메이션이라고 하기보다는 실사인 '영화'에 더 가깝다고 느껴질 정도로 (2D도 3D도 아닌 그 중간 어디쯤에 있는 듯한) 매우 공들여 작업한 게 소위 말해 '티가 났다.' 슬램덩크라는 당대 최고의 애니메이션을 영화화하기에 최선의 방식을 선택했다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이 포털 사이트에는 장르상 애니메이션이라고 되어 있으나, 소개는 '영화'라고 한 부분이 이해가 가는 대목이었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흥행 기록은 놀라웠고, 가히 신드롬(Syndrome)이라고 불릴 만했다. 최종 스코어는 457만, 2016년에 개봉한 '너의 이름은'(379만 명)을 제치고 역대 일본 애니메이션 탑을 찍었다. 슬램덩크의 성공에는 앞서 이야기 한 영상미 자체에도 있지만, 무엇보다 현재 3, 40대 세대들을 진하게 끌어당긴 '향수' 때문일 것이다. 향수에 젖은 이 세대들이 'N차' 관람을 이끌었고(나도 2차례나 봤다), 그 입소문이 다른 세대들을 불러들였다. 물론 스크린 체류 기간, 즉 상영 기간을 너무 길게 가져간 게 아니냐는 비판도 있었고, 또 일부에서는 일본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을 거론하며 '콘텐츠는 예외인 것이냐'라는 이슈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원작 만화 슬램덩크의 출판사였던 '대원'은 1분기에 이미 그 해 매출 목표를 다했다 전해질 정도로 신드롬의 기세는 막을 수 없었다.

 

 

료타(송태섭)의 이야기

  영화를 본 사람들은 다 알겠지만, 이 이야기는 송태섭의 스토리가 메인이다. 근데, 이 이야기 어딘가 낯익다. 슬램덩크의 찐 팬들이라면 당연히 눈치챘을, 이노우에의 단편 '피어스(Pierce)'와 연결되어 있다. 이 단편 '피어스'는 슬램덩크를 연재했던 '소년 챔프'를 통해 우리나라에서도 98년도에 소개가 된 바 있는 작품이다. 근데 슬램덩크를 재밌게 봤다는 주위 사람들도, 심지어 '피어스'를 이노우에의 단편으로 본 적이 있다던 사람들조차도 생각보다 이 이야기가 슬램덩크, 그중에서도 송태섭의 이야기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이 꽤 있다. 그 이유는 슬램덩크는 한국식 이름, 즉 송태섭으로 이름이 나오지만 피어스에서는 '료타' 일본식 이름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나도 처음에 피어스를 볼 때, 그냥 이노우에의 단편이구나 정도로 생각했다가, 주인공의 마지막 대사 '내 이름은 료가 아니거든, 내 이름은 료타라고'를 보고, "어???"라고 반문하며, "와, 이거 송태섭 이야기였구나" (더 정확히는 송태섭과 한나의 이야기)라고 깨닫고, 의외의 결말에 환호를 했던 게 기억난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송태섭의 스토리이면서, 단순 농구 스토리가 아니라 '가족애'가 느껴지는 이야기이다. 슬램덩크를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주인공들의 성장 스토리가 메인이지, 가족들과 연관된 내용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 원작의 주인공인 강백호가 아버지와의 슬픈 사연이 소개된 게 고작 전부이며, 그 내용도 전후 설명이 전혀 없이 지나간다. 굳이 한 가지 더 기억하자면, 정대만이 채치수네 집에서 공부할 때, "치수네서 공부한다고!" 하면서 부모님에게 짜증 내는 대화 정도. 원작과 비교했을 때, 좀 의외라고 느껴질 정도로 영화 속 송태섭의 가족 이야기는 매우 상세하다.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또 잘 따르던 형까지 잃게 된 후에 방황하는 송태섭과 남게 된 가족들, 어머니, 동생과의 스토리, 이 이야기가 영화 전반의 맥을 잡고 있다. 한 편으로는 이노우에가 송태섭이라는 캐릭터를 슬램덩크의 후속 단편작과 극장판 애니메이션까지 메인으로 세울 정도로 얼마나 애정하는지도 느껴지는 대목이다. 슬램덩크에서 이렇게 디테일한 가족 이야기를 다룬 것도, 처음(The First)이다.

 

  영화 중간중간, 송태섭의 과거에 정대만과 몇 번 조우하는 모습도 참 신선하고, 재밌고, 흐뭇한 장면들이었다. 어렸을 때 정대만과 길거리에서 농구하던 그때, 나중에 그 둘이 그렇게 원수지간처럼 싸우게 될지 알았을까? 명작은 아쉬울 때 끝낼 줄 알아야 더 명작으로 남는다고 하지만, 드래곤볼도 그만두겠다고 하고, 편집장과 심지어 문화부 장관(?)까지 나서 더 그려달라고 해서, 이후 몇 번의 명작 에피소들을 더 남겼던가. <더 퍼스트 슬램덩크>를 통해 잠시나마 어렸을 적 향수를 느꼈던 팬으로서,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이번이 라스트(Last)가 아닌, 이후 남겨질 후속작들의 진짜 퍼스트(First) 스토리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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