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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야기

눈먼 자들의 도시(Blindness), 실명을 통해 보게 된 인간의 본성(本性)

by Rail-road 2024. 6.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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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자들의 도시, 2008년 作)

 

실명(失明) 전염병, 눈먼 자들의 도시

  갑자기 이 세상 사람들이 전부 눈이 멀어간다면? 이 물음에 대한 답이 영화 <눈먼 자들의 도시>(2008년 作)에 있다. 영화 <눈먼 자들의 도시>는 동명의 소설, 영문명 <Blindness>(1995년 作)를 원작으로 한다. 이 소설의 작가 '주제 사라마구(Jose Saramago)'는 1998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할 정도로 세계 문학사 속에서도 엄청난 거장으로 잘 알려져 있다. 환상적 리얼리즘 안에서도 자신만의 독특한 문체와 세계관을 갖고 있는 그는 <눈먼 자들의 도시>를 통해 다소 말도 안 되는 설정처럼 보이는 이 '실명 전염병'을 소재로 인간의 본성을 파헤친다.

 

  1995년 작품임에도 영화화된 이 작품은 촌스럽지 않고 오히려 더 세련되다. 그만큼 원작이 갖고 있는 디테일한 인물 설정과 상황 묘사가 매우 강점이 작품인데, 그래서인지 영화화된 이 이야기가 어떤 식으로 전개될지, 또 원작과는 다른 차별적인 내용이 있을지 기대하는 사람이 있다면 오히려 조금은 실망하게 될지도 모르는 작품이다. 이야기적인 측면에서 봤을 때 원작을 충실하게 옮겨놓았다고 생각은 하지만, 이 부분이 영화 흥행에는 그다지 좋게 반영되지는 못한 듯하다. 적어도 한국에서의 성적은 관객수 64만 명으로 크게 흥행하지 못했다. 원작이 갖고 있는 팬덤(fandom)에 비교했을 때 다소 실망스러운 스코어였다. 

 

  원작 소설을 우연한 계기로 접해 단 이틀 만에 책을 다 읽어내고 (원래 빠르게 책을 읽는 스타일이 아니기에 놀라울 만한 흡입력이 있는 내용이었다.) 그 당시 처음 알게 된 사라마구의 필력에 이끌려 후속작인 <눈뜬 자들의 도시>까지 섭렵할 정도로 팬이 되었지만, 나 역시도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는 다소 끌리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다. 한 가지 신기했던 건, 우리에게 영화 <비긴 어게인>과 <어벤저스> 속 헐크로 잘 알려진 배우 '마크 러팔로'가 이 영화의 메인 캐릭터 중 한 명인 '의사' 역할이었다는 게, (당시에는 잘 알지 못했다.) 다시 영화를 리뷰하는 지금에서 보면 좀 신기한 발견이었다.

 

 

실명을 통해 보게 된 인간의 본성(本性)

  영화 속 이야기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는 처음 눈이 먼 사람을 시작으로 사람들에게 점점 전염되어 가는 과정이며, 두 번째는 눈먼 자들의 병원 수용소 생활, 마지막은 수용소를 나와 모두가 눈이 먼 도시에서의 생활까지. 이 중 두 번째 부분인 수용소에서의 생활은 가혹하다 못해 가히 참혹하다. 대소변을 잘 가리지 못해 수용소 내에는 여기저기 인분 투성이며, 사라지지 않는 악취와 생존(식량)을 위해 폭력을 휘두르는 것은 물론 총을 겨누어 오로지 성욕을 위해 여자를 탐하기까지 한다. 그들은 가장 기본적인 욕구를 위해 아주 처절한 모습을 보인다. 실명이란 소재를 통해, 인간의 숨견진 본성을 보게 된 것이다. 단지 시력을 잃었을 뿐인데, 왜 이런 혼란이 일어나는 것일까? 이 모든 일의 근원인 ‘실명 전염병’의 원인은 과연 무엇일까.

 

  소설에서도 그랬든 영화에서도 역시 사람들이 눈이 멀게 된 이유는 끝까지 나오지 않는다. 마치 그 이유는 처음부터 중요하지 않았던 것처럼. 그리고 유독 '의사의 아내'(줄리안 무어 분)만이 눈이 멀지 않았던 이유도 짐작 조차 할 수 없다. 눈이 보이는 의사의 아내를 통해 관객은 그 상황을 더 철저하게 인식할 수 있게 되는데, 아마 그것이 이 작품 속에서 단 한 명 만은 눈을 멀게 할 수 없었던 진짜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이야기 속에서는 악한 본성 외에도, 이런 최악의 상황 속에서도 의사의 아내의 희생 정신과 사람들 사이에서의 사랑, 서로가 서로를 의지하는 모습 등을 통해 분명 '선한 본성'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도시를 나온 의사와 의사의 아내 일행들은 한 거처에 머물게 되고, 그곳에서 첫 번째로 눈을 잃었던 남자가 불현듯 다시 시력을 되찾는다. 모두가 진심으로 축복하는 와중에, 내일 혹은 다음 주에는 모두가 차차 눈을 뜨게 되지 않을까 기대를 안고 '검은 안대를 한 노인'(대니 글로버 분)의 독백으로 영화는 막을 내린다. 유일하게 눈이 멀지 않았던 의사의 아내를 생각하며, '끔찍하게 이 순간을 기다렸던 이 여인은, 지금 자유를 느낀다'라고 이야기한다.

 

 

소재에서 오는 영화적 한계

  <눈먼 자들의 도시>는 개봉하던 해에 제61회 칸국제영화제에 개막작으로도 상영되었는데 당시에도 노벨문학상 작가의 원작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많은 관심과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다만, 앞서 이야기하였듯이 (해외에서는 어떤 흥행을 써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국내에서는 다소 실망스러운 성적임에는 틀림없다. 이는 원작 소설을 읽을 때는 눈이 멀게 된, 모든 게 보이지 않는 그 절망적인 상황을 상상하며 실제로 내가 눈이 먼 것과 같은 감정 이입을 하게 되는데, 영화적 특성상, 영상을 통해 그런 상황 자제가 '보이게' 되다 보니, '보이지 않는' 이 상황을 '보게끔 하는' 영화적 연출이 극의 흡입력을 떨어뜨리게 된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만약 이 작품이 크게 성공했더라면, 후속작인 <눈뜬 자들의 도시>도 영화화되지 않았을까 상상도 해보지만, 개인적으로 이 영화가 성공했더라도 <눈뜬 자들의 도시>는 영화화되지는 못했을 것으로 본다. (전작에 비해 몰입감이 떨어져, 의무감으로 읽었던 기억이 있다.) 어쨌든 영화 그 자체보다는 원작 소설과 연관되어, 한 번쯤은 소설과 영화를 같이 비교하여 즐겨볼 준비가 되어 있다면, 충분한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그런 작품으로 이 영화를 추천한다. 단, 무조건 소설을 먼저 읽어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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