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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이야기10

가을 '단풍놀이'로 딱인 이곳, 오대산 월정사의 역사적 의미는?(feat.전나무숲길) 단풍놀이의 계절 이제 곧 10월입니다. 아직까지 한낮에는 좀 덥긴 하지만...(9월 말에 이런 더위는 또 처음이네요.) 그래도 아침, 저녁으로는 제법 선선한 것이, 누가 떠밀지 않아도 스스로 산책 나가고 싶을 정도로 걸을 만 해졌습니다. 가을바람이 선선해지는 10월 우리나라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찾는 '놀이(?)'가 하나 있죠? 바로 '단풍놀이'입니다. 올해 단풍 시즌은 강원도 같이 추운 지역은 빠르면 10/13 정도부터 시작되고, 따듯한 남쪽 지방은 11월 초까지도 알록달록 단풍을 구경할 수 있다고 하니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작년에 저도 11월 초 조금은 늦은 가을, 강원도 여행을 갔다 돌아오던 길에 우연히 '오대산 월정사'를 찾았는데, 단풍이 거의 다 지는 늦은 시기였음에도 산속 곳곳 얼룩처럼 남아 있.. 2024. 9. 27.
천년고도(千年古都) 경주, 첨성대 이야기 천년고도(千年古都) 경주, 첨성대를 찾다'24년 무더운 여름이 시작되기 전, 아이들과 경주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천년고도' 역사의 도시, 경주에서 교육용(?) 여행이라는 부푼 꿈을 안고 출발했지만 실상은 아이들과 그저 놀고, 먹기 바빴다는.. 집으로 돌아가기 하루 전날 저녁, 어김없이 아이들과 먹거리를 즐기기 위해 찾아간 '황남시장'(경주에서는 '황리단길'로 불린다죠.)에서 택시를 타고 다시 숙소로 돌아가던 중 저 멀리 어둠 너머로 어딘가 익숙한 실루엣을 발견했습니다.  아! 맞다! 첨성대를 봐야 하는데..  집에 돌아가는 날 일정은 기차 시간도 있고, 미리 정해놓은 스케줄 때문에 사실상 첨성대를 들리기 어려운 코스였지만, 저 멀리 어둠 속에 홀로 서 있는 첨성대를 보니 다른 일정을 포기해서라도 억지로.. 2024. 8. 31.
[시험 정보] 71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답안지 발표, 다음 시험 일정은? 71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시행제71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이 오늘 '24년 8월 10일(토)에 진행되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각자의 목적을 갖고 이번 시험에 응시하셨을 텐데, 제가 너무 좋아하는 UFC 김동현 선수도 시험 후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드디어 셤 끝났다!!'라고 한국사검정능력시험 시험지와 함께 사진을 게재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tvN의 '벌거벗은 한국사'에 오랫동안 출연 중인 김동현 선수, 단순히 방송이 아닌 진심으로 한국사를 사랑하고 관심 있어하는 모습입니다. 금일 치러진 71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의 정답은 이미 금일 오후 14시경에 발표가 되었습니다. 답안지는 한국능력검정시험 홈페이지 > 문제관리 > 시험자료실에 업로드되어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이란?많은 사람.. 2024. 8. 10.
조선의 비운의 왕, 단종의 복권과정 조선의 비운의 왕, 단종  조선의 역대 왕들 중, 단종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말, '비운의 왕'일 것이다. 선왕이었던 문종이 죽은 뒤, 12살의 어린 나이에 국왕으로 등극하여 짧은 재위기간 동안 많은 수난을 겪었으며, 폐위 후에도 자신을 둘러싼 여러 복위 운동에 직간접적으로 휘말려 결국 17살이 되던 해 비운의 죽음을 당했다. 왕으로서 시호도 없이 사후 '노산군'이란 이름으로 20여 년을 보냈으며, 왕릉도 수도 한양에서 아주 먼 지금의 강원도 영월 땅에 묻혀 있다.  단종의 생애  단종의 이름은 '홍위(弘暐)'이며, 어머니는 현덕왕후 권 씨로 1441년(세종 23년)에 당시 왕세자였던 문종과 세자빈 권 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세자빈 권 씨는 단종을 나은 지 3일 만에 죽었다.) 단종은 여덟 살.. 2024. 6. 23.
조선 말 청국조계지(租界地)와 차이나타운 개항  고종 20년(1883) 1월 인천에서 개항이 이루어졌다. 1876년 '강화도조약(조일수호조규)'의 결과 일본에 의해 1876년 부산에서 첫 개항이 이루어졌으며, 1880년 원산에 이어 인천의 제물포가 세 번째 개항장으로 지정된 것이다. 인천의 개항으로 조선시대 대외 교역의 중심지였던 부산항의 비중이 점차 줄어들었으며, 더불어 강화도의 위상도 변하면서 인천이 새로운 요충지로 떠오르게 되었다. 사실 조선 정부는 인천의 개항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처음부터 강경한 거부 자세로 일관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훗날 인천이 '조선 개항의 상징'이라 불려질 정도로, 수도에서 아주 가까운 해안의 요충지인 인천을 개항하게 되면 서울의 시장이 피폐해지고 민생이 어려워질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끈질긴 일본 측의 .. 2024. 6. 11.
'요재지이(聊齋志異)'를 통해 본 청나라의 시대상 『요재지이』, 청나라 시대 속으로  우리는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흔히 “저건 좀 말도 안 돼!”라는 표현을 종종 쓰곤 한다. 소재의 현실성, 사건의 개연성 등 어느 하나 말이 되지도 않는데도 우리는 그런 이야기에 더욱 끌리게 된다. 그 이유는 물음과 동일하다. ‘말이 안 돼’기 때문이다. 상상 속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를 통해서 그것을 구체화하고 때로는 그 이야기에 자신을 동일시하면서 그 속에서 일종의 희열을 느낀다.   『요재지이』는『삼국지』,『수호지』,『금병매』,『홍루몽』등과 더불어 중국의 8대 기서 중 하나이다. 다른 것들과 달리 어딘가 제목에서부터 괴이한 느낌이 들었다. ‘요’라는 글자가 주는 이미지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지만 왠지 이 이야기는 요괴나 귀신의 이야기일 것이란 생각이 들었고 난 그런 .. 2024. 6. 10.
6-7세기 고구려 벽화고분-사신(四神)도 6-7세기 고구려 고분벽화의 주제는 거의 대부분이 '사신(四神)도'로 이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주제와 표현 방식에 있어서 많이 영향을 주었던 것은 이른바 '남북조' 양식이라 불리는 중국 남북조시대 때이다. ‘사신의 시대’로 불려질 만한 이 흐름에서도, 앞서 이야기했듯이 고구려는 그 수용에 있어 선택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평양권 고분벽화의 사신도  우선 평양권 지역에 속한 진파리 1호분의 사신도를 살펴보면 비록 남북조 양식으로 표현된 수목과 연봉오리 사이에 현무가 자리 잡았지만, 중국에서 등장하는 사신은 일반적으로 도교 계통 선인의 종속적인 존재로 표현되는 것과는 달리, 고구려의 고분벽화는 사신이 널방 각 벽면의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또한 '강서대묘'와 '강서중묘'의 벽화는 남북조 벽화.. 2024. 6. 9.
고구려 고분벽화의 특징 고구려 고분벽화의 분포  우리 역사 속에서 고대 시대라고 하면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 시대를 생각하면 된다. 고대 삼국의 고분벽화는 현재까지 총 110기 이상이 발견되었다고 하며, 그중 백제와 신라가 각 2기, 1기는 가야의 것으로 알려졌다. 다시 말해, 나머지는 전부 고구려의 것이라는 뜻이다.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은 벽화들이 존재한다고 가정하더라도 이는 고분벽화 문화가 한반도 이남 지역으로는 뿌리 깊게 정착되지 못했음을 짐작할 수 있게 하는 수치이다. 또한 고구려는 3세기 말부터 7세기 전반까지 지속적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추측되는데, 이에 비해 백제와 신라, 가야의 벽화 고분은 6세기라는 특정 시기로 한정되어 있다. 이런 고구려의 고분 벽화도 대부분이 지금의 평안남도와 황해도 지방(평양, 안악),.. 2024. 6. 8.
고분벽화와 장의미술 고분벽화란  '고분'은 우리말로 바꾸어 표현하면 '옛 무덤'을 뜻하며, 벽화는 말 그대로 벽의 그림, 즉 벽에 그린 그림을 말한다. 보통 벽화는 건축물 내외의 천장과 벽면을 화폭으로 삼아 그린 그림을 말하지만 고분이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고분벽화'란 옛 무덤(내 벽면 혹은 천장)에 그려져 있는 그림을 뜻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옛 조상들은 왜 죽은 자가 묻히는 고분에 벽화를 그려 넣고자 했던 것일까.   고분벽화라는 것은 일종의 '장의문화'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장의문화란 넓은 의미로 사람이 죽은 후 행해지는 일련의 의식들 및 매장 방식, 방법 등 장례와 관련된 모든 문화를 뜻하는데 사실 ‘죽은 자를 매장한다.’는 문화 자체가 사후세계에 대한 관념, 즉 내세관을 형성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 2024. 6.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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